애니·만화책

의사 출신 일본 만화가 테즈카 오사무 이야기 아톰에서 불새까지

푸른빛의선풍 2024. 4. 6.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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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명 만화가 '테즈카 오사무(手塚治虫 / Tezuka Osamu)'의 일생을 그린 만화책입니다.
그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고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단행본 네 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거 같습니다.
일본에 관심 있거나 만화, 애니메이션 좋아하는 덕후라면 좋아하실 거 같아요.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테즈카 오사무는 일본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 일본을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평가받습니다.

일본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만화의 신()이라 불리는데요, 그 이유는 일본이 만화왕국이 되는데 크게 기여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본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만화 때문이고 성인이 된 지금도 피규어를 좋아합니다.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 중에서 역시 '아톰'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성인이 되고 알았는데 어린 시절 봤던 TV 애니메이션 중에서 그의 작품이 많아서 놀라웠습니다.

보물섬(宝島), 손오공(孫悟空), 밀림의 왕자 레오(원제 : 정글대제 / ジャングル大帝), 불새(), 사파이어 왕자(원제 : 리본의 기사 / ボンの騎士) 등등 그 외 테즈카 오사무가 부분 작업 참여한 '신밧드의 모험(アラビアンナイト シンドバットの冒険)'까지도 있다.

지금 40대 이상의 성인들이라면 기억하고 계실 거 같아요!

사파이어 왕자는 공주가 남장을 한 채 사랑에 빠지고 기사로서 전투도 하는 내용인데 오래전 MBC에서 방영했습니다.

어릴 때 봐서 정확한 연도는 기억이 안 납니다.

 

 

 

 

테즈카 오사무의 팬이 된 계기는 만화 '불새'를 보고 나서였다.

불새의 심오하고 깊은 철학적인 내용에 감명 받았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역사까지 총망라한 작품으로서 SF적인 요소까지 겸하고 있어서 스케일이 큽니다.

원작은 1954년부터 1986년까지 연재됐던 만화입니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고 테즈카 오사무의 건강 악화로 완성하지 못한 역작으로 남게 됐죠.

불새는 일본 최초로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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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즈카 오사무는 1928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당시 일본은 전쟁으로 물자가 풍족하지 않아 그림 그릴 종이가 부족했습니다.

이때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였습니다.

 

 

 

 

테즈카 오사무의 아버지는 카메라로 촬영하고 영사기를 돌려 영상을 즐겨봤습니다.

당시 이런 장비는 일본에서도 부자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고가품이었죠.

아버지의 취미 생활에 영향을 받아 테즈카 오사무는 애니메이션 제작의 꿈을 가지게 됩니다.

 

 

 

 

테즈카 오사무의 어린 시절 놀이는 곤충 채집이었습니다.

직접 곤충도감을 만들 정도로 그림 실력이 뛰어났고 당시 전쟁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의 만화를 보면 인류의 자연 파괴를 경고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테즈카 오사무의 중학생 시절 아버지는 징집으로 전쟁에 끌려가는데요, 이때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아시아가 일본을 중심으로 뭉쳐 서양과 싸워야 한다는 군국주의 이념이 강한 시기였습니다.

 

 

 

 

일본이 항복하기 전까지 미군의 공습으로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직접 목격했고 마을이 폐허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되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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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에서 625 전쟁이 발발하자 자신의 만화에 평화적인 메시지를 담은 만화 '로스트 월드'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재일 한국인의 차별을 반대하고 일본의 잘못된 침략 전쟁에 대해 반성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서 조선인들에게 사죄하기 위해 만든 '긴 땅굴(ながい窖)' 만화는 어찌 된 일인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의 압력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테즈카 오사무는 중학생 때 교련 수업을 받던 중 팔을 다칩니다.

치료가 늦었더라면 팔을 절단해야 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그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자신은 군인이 되어 전쟁에 참가하는 것보다 의사가 되어 사람을 구하겠다고 결심한 것이죠.

만화가가 된 후에도 의사로 계속 활동하는데 당시 만화가의 수입이 불안정했기 때문입니다.

 

 

 

 

테즈카 오사무의 인생 최대 고민, 의사가 될 것인가? 만화가가 될 것인가?

의사와 만화가 두 가지 일을 다 할 수는 없었다.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 어머니와 상담했는데 좋아하는 걸 하라는 어머니의 말에 역시 좋아하는 일은 만화를 그리는 것이었죠.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면서도 출판사의 마감시간에 쫓겨 간호사와 같이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일본 출판 만화의 성공으로 일본은 월간지에서 주간지로 발행이 빨라지게 됩니다.

 

 

 

 

베레모가 만화가를 상징하게 된 사연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보면 베레모를 즐겨 쓰는 사람이 많은데 일본의 영향이었군요.

확실히 베레모를 쓰면 작가처럼 보이죠.

테즈카 오사무의 사진을 보면 베레모를 쓴 사진이 많습니다.

 

 

테즈카 오사무 이야기 4: 1977-1989:잡지 만화에서 애니메이션 그리고 세계의 무대로, 학산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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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즈카 오사무가 창시한 만화 기법 중의 하나는 네모칸 안에만 그려야 한다는 틀을 깨버렸습니다.

네모칸 안에서 튀어나올듯한 기법으로 입체감이 살아납니다.

 

 

 

 

일본은 개방적이고 만화에 대한 혐오감이 없었기 때문에 만화왕국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초창기 일본도 만화는 어린이들이나 보는 것이며 공부에 방해되는 악서 취급을 받았습니다.

당시의 어른들은 만화라는 매체를 이해하지 못했고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했죠.

그래서 만화가란 직업은 미래가 불투명한 직업이었습니다.

테즈카 오사무는 만화를 거부하는 사회 인식 때문에 고뇌에 잠기기도 하고 더욱더 좋은 만화를 그리겠다고 결심합니다.

 

 

 

 

테즈카 오사무는 엄청난 영화 광인데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일본도 미국에 뒤지지 않는 애니메이션 제작 국가가 될 수 있다며 만화가로 번 돈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차리는 데 투자합니다.

미국의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표현 기법을 연구하고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 후 미래와 우주를 다룬 SF 장르를 개척하기 시작합니다.

 

 

 

 

일본 최초의 애니메이션 제작에 도전하는 테즈카 오사무입니다.

처음엔 아무런 기술이 없었고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교육 시설도 없었기 때문에 제작이 가능한 인력도 없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에 필요한 투명한 비닐 용지()에 그릴 수 있는 펜과 물감도 없어서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테즈카 오사무가 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최초로 애니메이션 제작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의 기술을 축적했기 때문입니다.

애니메이션의 높은 제작 단가를 낮추기 위해 리미티드 기법을 창시하는데 애니메이션의 프레임을 절약하는 기법이죠.

돈벌이가 급한 동종업계와 관련 기업들에게 비난도 받지만 이는 일본에서 더 많은 애니메이션이 제작되는 계기가 되었고 일본 애니메이션 발전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도 제작 단가를 낮춘 것 때문에 테즈카 오사무를 비판했습니다.

리미티드 기법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재미있는 스토리 덕분입니다.

당시까지 만화는 개그 소재가 전부였는데 만화 캐릭터에도 인물의 감정을 넣어 기쁨과 슬픔, 분노를 표현하여 스토리가 있는 극화를 창시했습니다.

그래서 테즈카 오사무는 스토리 극화의 창시자로 불립니다.

 

 

 

 

일본 최초의 애니메이션은 철완 아톰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아톰보다 먼저 제작된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정식 애니메이션이 아닌 TV 광고에 사용된 장면이라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TV판 애니메이션 제작은 성공했지만 다음 방송일까지 다음 화 제작을 마쳐야 했으므로 늘 철야에 시달렸습니다.

테즈카 오사무와 스태프들은 시간에 쫓겨 지쳐 쓰러지기도 했지만 일본 최초의 애니메이션 제작이란 자부심을 갖고 버티었습니다.

실제 방송 편성일까지 완성을 못한 적도 있어서 그런 날은 재방송으로 때우기도 했습니다.

 

 

 

 

철완 아톰이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성공하자 경쟁사의 방송국들이 시청률을 뺏기지 않으려고 제작한 어린이용 프로그램이 특촬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울트라맨이 성공하였고 테즈카 오사무의 자식들도 자신의 아버지가 만든 애니메이션보다 특촬물 울트라맨을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역설적으로 일본 애니의 성공은 특촬물 시리즈가 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

 

 

 

 

테즈카 오사무는 삐죽삐죽 솟아나는 머리카락이 콤플렉스였는데 그것이 힌트가 되어 아톰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드래곤볼(ドラゴンボル)'의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鳥山明)'도 아톰의 삐죽 머리를 보고 손오공 캐릭터를 만든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테즈카 오사무는 만화가로 성공해서 번 돈으로 무시 프로덕션을 차렸습니다.

돈벌이를 위한 상업주의로 가느냐, 혹은 돈벌이에 연연하지 않고 완성도가 높은 애니메이션 제작의 길로 갈 것인가를 놓고 스태프들과 의견 충돌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애니메이션 제작이 최초였기 때문에 만들면 팔린다는 인식이 생겨 스태프들이 상업주의를 고집했습니다.

완성도가 높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싶었던 테즈카 오사무는 무시 프로덕션을 그만두고 테즈카 프로덕션을 차립니다.

그 후 무시 프로덕션은 도산합니다.

 

 

 

 

만화 덕후라면 '테즈카 오사무 이야기' 책은 꼭 읽어봐야죠!

양이 많아서 블로그에 전부 소개하기는 힘들지만 중요한 내용들만 정리했습니다.

지금 한국 드라마와 영화, KPOP 등으로 한류 붐이 생겼듯이 테즈카 오사무는 전 세게에 일류 붐을 일으켰습니다.

아톰의 영향으로 일본에는 로봇 만화가 쏟아지고 해외에는 일본의 로봇 만화 마니아가 생길 정도였죠.

후배 만화가들에게도 좋은 지침서 역할을 하는 책입니다.

만화 블랙잭을 통해서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라는 명언도 남겼고 만화가는 어른으로서 어린이에게 어떤 메시지와 영향을 줄 것인가를 고민한 아티스트였습니다.

은하철도 999로.

그는 최초란 수식어가 많이 붙을 정도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틀, 기초, 방식을 만들었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철학을 완성하였습니다.

그중 스타 시스템은 만화의 캐릭터들을 마치 배우처럼 다른 작품에도 출연시키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이 크게 흥행하여 후대 일본 만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드래곤볼에도 닥터슬럼프의 캐릭터들이 출연하는 것처럼 말이죠.

은하철도 999와.

그런 테즈카 오사무도 고민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그린 만화의 인기가 떨어지진 않을지 독자들에게 외면받지 않을까 스트레스도 심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많은 만화를 그린 사람으로 기네스북에도 등록되었는데 흥미롭지 않은가요?

그럼 다음에 또 다른 리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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